철학

우연인가, 필연인가: 우리는 자유로운가, 결정된 존재인가

journal6000 2025. 5. 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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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으로 본 ‘필연’에 대한 고찰

‘필연(必然, Necessity)’은 인간의 사유와 존재,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오래도록 철학자들에게 핵심 주제가 되어왔다. 필연은 우연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인과관계, 자연법칙, 도덕적 의무, 존재론적 구조 등 다양한 철학적 영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1. 고대 철학에서의 필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연의 질서와 법칙성을 통해 필연의 개념을 설명하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는 말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모든 변화에는 로고스(이성적 질서)가 있다는 점에서 우주의 필연적 구조를 인정했다. 그의 사상은 자연 속 변화조차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본 것이다.

플라톤은 필연을 ‘이데아의 세계’와 연결지었다. 현실 세계는 불완전하고 변화하지만, 이데아 세계는 완전하고 변하지 않으며 필연적이다. 예컨대, 수학적 진리나 정의의 개념은 변화하지 않고 필연적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진정한 지식은 이러한 필연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고 보았다(목적론).

그는 네 가지 인과(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를 통해 사물의 존재와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구조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2. 중세와 필연 – 신의 섭리

중세철학에서는 필연의 개념이 신학과 결합된다. 아우구스티누스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통해 세계의 질서를 설명하였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움직이며, 이는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자유의지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중 진리의 입장을 취했다. 신의 계획은 필연적이지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며 이는 신의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인간의 선택은 신의 섭리 속에서 필연적이면서도 자유롭다는 모순적인 논리를 정립했다.

 

3. 근대철학 –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충돌

근대에 들어서면서 과학적 세계관의 발달은 필연성을 자연법칙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강화시켰다. 데카르트, 뉴턴, 라이프니츠 등은 세계를 기계론적으로 보았으며, 모든 현상은 이전 상태로부터 반드시 따라오는 결과, 즉 필연적인 결과로 보았다. 라이프니츠는 "현실 세계는 가능한 세계 중 가장 완전한 세계"라며 이 세계의 모든 존재와 사건은 신에 의해 예정된 필연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정론적 세계관은 스피노자에 이르러 극단으로 나아간다. 스피노자는 하나님과 자연을 동일시하고, 모든 것은 신의 본성에 따라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감정, 생각, 행동조차도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유란 필연을 이해하는 것, 즉 우리는 우리 자신과 자연의 법칙을 이해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반면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과 자유를 강조한다. 그는 자연의 영역은 인과율에 따라 필연적이지만, 인간은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존재로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는 ‘현상계’와 ‘물자체’를 구분함으로써, 물리적 세계의 필연성과 인간의 도덕적 자유를 양립시키려 했다.

 

4. 현대 철학에서의 필연과 가능성

현대에 이르러서는 논리적 필연성형이상학적 필연성의 구분이 강조된다. 사무엘 크립키(Saul Kripke)는 형이상학적으로 필연적인 진술과 단지 경험적으로 참인 진술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물이 H₂O이다"는 진술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한번 밝혀지면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필연적이다. 이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할 때, 단순히 감각이나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도 필연적인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만든다.

한편 하이데거사르트르 등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필연보다는 존재의 ‘우연성’과 인간의 ‘자유’를 강조했다. 특히 사르트르는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말을 통해, 인간 존재는 어떤 필연적인 본질이나 목적 없이 먼저 존재하며, 이후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만들어간다고 주장했다. 그는 필연적 규범과 제도, 전통에 의한 인간의 규정을 부정하면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롭고,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고 보았다.

 

5. 필연 vs. 우연 – 오늘날의 의미

오늘날 철학에서 필연은 여전히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단순히 “모든 것은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결정론적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양자역학에서 나타난 확률적 우연성불확정성 원리는 전통적인 필연성 개념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현대 과학철학자들은 필연과 우연 사이의 관계를 보다 유연하게 보려 한다.

또한 인간의 삶에서 필연은 종종 실존적 질문으로 나타난다. “나는 왜 이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 만남, 이 고통은 우연인가 필연인가?”라는 질문들에서, 사람들은 필연이라는 개념을 단지 인과율이 아닌, 삶의 의미와 운명에 대한 사유로 확장하고 있다.

 

필연은 철학에서 단순한 논리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깊은 사유의 대상이다. 우주는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필연적 체계인가? 아니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한한 가능성과 우연성의 연속인가? 이 물음은 여전히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며, 삶의 방향과 의미를 고민하는 데 중요한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필연은 ‘존재한다’는 입장 (결정론)

이 입장은 세상의 모든 사건과 현상이 일정한 원인과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봅니다. 즉, 지금 이 순간의 일도 과거의 원인에 의해 반드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 고대 스토아학파: 세계는 로고스(이성적 질서)라는 자연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움직인다고 보았습니다.
  • 스피노자: 신이 곧 자연이고, 모든 것은 신의 본성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자유조차도 신의 필연 안에 포함된 것이다.
  • 뉴턴적 결정론: 고전역학의 관점에서는 우주는 거대한 기계처럼 움직이며, 모든 입자의 운동은 이전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우연은 단지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일 뿐입니다.

→ 요약: 세상은 철저히 인과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우연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우리가 모르는 필연’일 뿐이다.

 

필연은 없다, 모든 것은 우연과 가능성의 산물이다 (비결정론)

이 입장은 "세상에는 반드시 그래야 할 일은 없다"는 전제를 가집니다. 모든 일은 가능성 중 하나가 실현된 결과일 뿐이며, 다른 결과도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 실존주의 (사르트르): 인간은 본질이 정해지지 않은 존재다. 우리는 태어났고, 그 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필연적인 본질이나 목적은 없다.
  • 양자역학: 현대 과학에서는 자연 현상에 확률과 불확실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고전 물리학의 필연성과 충돌하며, "미래는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어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은, 자연 그 자체에 우연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 요약: 세상은 우연과 가능성의 조합일 뿐이며, 필연은 인간이 안정을 위해 만든 허상일 수 있다.

 

필연과 우연의 통합적 시각

일부 철학자나 현대 사상가들은 필연과 우연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고, 서로 얽혀 있다고 봅니다.

  • 필연적 구조 속의 우연한 사건: 어떤 틀(자연법칙, 논리)은 필연적이지만, 그 틀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우연에 가깝다고 봅니다. 예: "물은 끓으면 수증기가 된다"는 것은 필연이지만, 언제 물을 끓일지는 우리의 자유입니다.
  • 자유의지와 필연의 공존(칸트식 해석): 현상 세계에서는 필연이 지배하지만, 도덕적 행위자로서의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즉, 물리적 세계와 인간 행위는 서로 다른 법칙을 따른다.

 

 

"원래 필연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필연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 만든 개념일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과 인간의 삶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많은 부분이 우연과 자유 속에 놓여 있다.

즉, 필연은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으며,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계관과 인생관을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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